한동훈 무소속 당선 — 보수 표심은 계엄과의 단절을 선택했나

부산 북구갑 재보궐에서 제명 5개월 만에 무소속으로 생환한 한동훈. 복당 기류와 7월 27일 윤석열 공직선거법 선고를 앞에 두고, 보수 표심이 고른 방향을 읽는다.

발행 2026-06-14

6월 3일 밤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재보궐 개표는 새벽 2시를 넘겨서야 끝났다. 무소속 한동훈 42.96%, 더불어민주당 하정우 41.26%. 차이는 1,392표였다. 국민의힘 박민식은 15.76%에 머물렀다. 전재수가 부산시장 선거에 나서며 비워 둔 자리, 다섯 달 전 국민의힘에서 제명된 정치인이 그 자리로 국회에 돌아왔다. 당선 일성은 "보수 재건"이었다.

이 42.96%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제명된 거물에 대한 동정표인가, 민주당을 막으려는 표인가. 아니면 — 부산의 보수 유권자는 누가 시키기 전에, 이미 계엄과 끊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 글은 그 세 번째 물음을 따라가 본다.

계엄의 시간, 한동훈의 시간

이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확인할 것이 있다. 유권자가 고른 한동훈이 계엄의 어느 자리에 서 있었는가다.

한동훈의 이력은 윤석열과 떼어 읽을 수 없다. 2003년 대검 중수부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처음 한 팀이었고, 2016년 국정농단 특검에서 윤석열 수사팀장 아래 파견검사로, 2017년에는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 아래 3차장검사로 일했다. 언론이 "윤석열 사단의 핵심"으로 불러 온 경로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이 됐고, 2023년 말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치에 들어와 이듬해 7월 전당대회에서 62.8%로 당대표가 됐다. 균열은 그 무렵부터 쌓였다. 김건희 여사의 텔레그램 문자에 답하지 않은 일이 전당대회에서 쟁점이 됐고, 의대 증원 유예를 제안했다가 대통령실과 부딪혔으며, 명태균 의혹 국면에서는 "김건희 라인은 존재해선 안 된다"며 인적 쇄신을 공개 요구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의 시간과 한동훈의 시간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다.

계엄의 시간과 한동훈의 시간 비교 —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한동훈은 '위헌·위법' 공개 반대 후 국회로, 계엄군 진입 때 의원 휴대전화로 본회의장 소집 지시, 방첩사령관이 국정원에 넘긴 체포 명단에 이재명·우원식과 함께 포함, 12·4 해제 결의 때 소속 의원 다수는 불참.
계엄의 시간, 한동훈의 시간 · 2024년 12월 3일 밤~4일 새벽

집권 세력이 선포한 계엄에서 집권당 대표가 체포 대상에 올랐다. 12·3의 여러 장면 가운데 구도가 가장 뒤틀린 대목이다. 이후의 행보는 직선이 아니었다 — 탄핵 저지에서 출발해, "정치인 체포에 정보기관 동원"을 확인했다며 직무정지 필요로 옮겼고, 12월 12일에는 당론 탄핵 찬성을 공개 요구했다. 가결 이틀 뒤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취임 146일 만이었다. 그리고 올해 1월, 국민의힘은 당원게시판 사건을 사유로 그를 제명했다. 최고위 표결은 찬성 7, 반대 1, 기권 1. 한동훈 측은 "탈당이 아니라 부당한 제명"이라는 입장을 냈다. 지난해 대선 경선에서는 결선까지 올랐지만 후보 자리는 김문수에게 돌아갔다.

자기 정부의 계엄군이 체포하려 했던 당대표를, 그 당이 제명했고, 다섯 달 뒤 부산의 유권자가 그를 다시 국회로 보냈다. 12·3 밤의 행보로 보수 진영 안에서 가장 비싼 값을 치른 정치인이, 보수 유권자의 표로 돌아온 것이다.

예측을 뒤흔든 결집

개표 전까지 이 결과를 가리킨 신호는 많지 않았다. 5월 중순 한 방송사 여론조사에서 한동훈 34.6%, 하정우 32.9%, 박민식 20.5% — 오차범위 안 3파전이었다. 전국 구도는 민주당 우세 전망이 일반적이었고, 광역 12 대 4라는 결과로 그 전망은 대체로 실현됐다.

북구갑만은 달랐다. 개표 전날 정준희가 출연한 방송의 분석은 하정우 당선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정준희는 여론조사의 한동훈 우위부터 의심했다 — "객관적 수치라고 보긴 좀 어려운 면이 있다", 한동훈 지지층이 조사에 적극 응하는 쏠림이 있어 "원래 나올 만한 수치 쪽으로 복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막판 TV 토론에서 하정우가 한동훈을 몰아붙이며 인지도를 끌어올렸다는 관찰도 뒤따랐다(개표 직후 방송, 화자 추정). 다만 정준희는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촉"을 분석과 분리해 남겨 뒀다.

"박민식에서 결과적으로 빠져나오는 표가 한동훈에게 갈 거 같아요. (…) 전략적 투표를 하려고 하는 심리가 일부 작동할 것 같고." — 정준희, 개표 전날 방송 (2026-06-02)

개표 결과를 조사 위에 포개면 어느 쪽이 맞았는지 드러난다. 하정우는 32.9에서 41.26으로 올랐다 — 분석의 기대만큼 올랐다. 그런데 한동훈도 34.6에서 42.96으로 같은 폭만큼 올랐다. 깎인 것은 박민식뿐이다. 20.5에서 15.76으로. 수치의 "복구"는 일어나지 않았고, 박민식 표의 이동이라는 촉이 적중했다.

선거 닷새 뒤 여론조사 전문가 박시영은 방송에서 이번 출구조사를 두고 "출구 조사가 이렇게 틀린 적은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라고 했다. 서울과 경남에서는 순위까지 뒤집혔고, 무응답층에 "샤이보수가 상당히 많았다"는 진단이었다. 다만 결과를 놓고 보면 '샤이'라는 말이 정확한지부터 따져 볼 일이다. 이 표는 숨은 게 아니라, 답할 곳을 조사가 아니라 투표함으로 정해 뒀을 뿐이다.

여기서 결집의 '방향'이 중요해진다. 선거 막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북구갑에서 박민식 지지를 호소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도 박민식 쪽에서 회자됐다. 정준희는 이 카드가 "보수 결집에는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다"고 봤다. 실제로 결집은 일어났다 — 그러나 표가 향한 곳은 전직 대통령들이 힘을 실은 공천 후보가 아니라, 계엄에 맞서다 제명된 무소속이었다. 숨어 있던 보수표는 행선지를 정해 두고 있었고, 적어도 이 지역구에서 그 행선지는 계엄 이전의 보수가 아니었다. 42.96%를 동정표로만 읽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면 물음은 한 겹 더 깊어진다 — 이 표심이 끊어 내려는 것은 윤석열 한 사람인가, 아니면 탄핵에 불복해 온 그 계보 전체인가.

표가 모인 후보가 내건 것도 모호하지 않았다. 한동훈은 유세 기간 기자회견에서 "계엄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지금 국민의힘은 빨간 옷을 입고 선거운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정치 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통령을 탄핵했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엄과의 단절을 감추기는커녕 선거의 전면에 세운 것이다. 첫 등원에서 한 말도 같은 밤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날 제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민의힘 당 대표로서 했던 결단과 행동으로 저는 그 이후 정치적인 형극의 길을 걸었다. 그렇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같은 길을 걸었을 것."한동훈, 당선 후 첫 등원 (2026-06-05)

유권자의 선택과 당선자의 선언이 같은 밤을 가리킨다.

힘을 모은 사람들, 보수 재건을 위한 행동

그런데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색깔이 아직은 불확실하다. 명예 선거대책위원장 서병수 전 부산시장은 2024년 총선에서 바로 이 지역구에 국민의힘 후보로 나서 전재수와 겨뤘던 인물로, 30년 당적의 국민의힘에 탈당계를 내고 캠프에 합류했다 — 다만 그가 밝힌 이유는 계엄이 아니라 "중도 외연 확장성"과 연대였고, 박근혜 탄핵을 두고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던 전력이 있다. 정미경 전 최고위원의 합류 명분도 "합리적·상식적 판단으로 당을 재건할 수 있는 사람은 한 후보밖에 없다"는 당 재건론이었다. 후원회장 정형근 전 의원은 더 멀리 있다 — 계엄 열흘 뒤 한 보수 유튜브 방송에서 "내란죄는 안 되고 이것은 대통령의 직권 남용"이라고 말한 사실이 보도된 인물이다. 다른 한편 개소식에는 "계엄 가해자는 윤석열"이라고 단언해 온 보수 논객 조갑제가 자리했다.

정형근 기용을 두고 한동훈은 이렇게 설명했다 — "누가 봐도 강한 보수 성향을 가지신 분께서도 계엄과 탄핵의 바다를 건너서 보수를 재건하겠다는 한동훈의 뜻에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은 천막 안에 계엄을 옹호했던 사람과 계엄을 단죄해 온 사람이 함께 앉아 있다. 이 조합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 — 계엄 옹호 세력까지 끌어안는 연합인가, 아니면 그의 단절 노선이 기준이고 사람들이 거기에 맞춰 모인 것인가. 선거 결과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유권자가 뽑은 것은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는 사람이고, 답은 앞으로의 행보에 있다. 다만 분명한 것도 있다. 가장 앞에 놓인 입장은 계엄과의 단절과 보수 재건이며,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그 입장 아래에 모였다.

복당의 문과 7월 27일

국민의힘의 문은 그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거 직후만 해도 당내 기류는 복당 논의를 닫아 두는 쪽이었고,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복당까지 최소 1년이 필요하다는 신중론까지 나왔다. 그런데 6월 10일 정점식 원내대표 선출 다음 날, 기류가 달라졌다.

"한동훈 의원도 보수의 한축을 형성하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본인이 복당 의사를 밝힌다면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숙고하겠다."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 (2026-06-10, 방송 보도 인용)

이 문장의 구조를 눈여겨볼 만하다 — "본인이 복당 의사를 밝힌다면". 공은 한동훈에게 넘어가 있다. 그런데 그의 동선을 따라가 보면, 그 공을 서둘러 차지 않는다. 한 방송 대담은 이 국면을 두 물음으로 정리했다 — 한동훈을 "받아 줄 거냐", 아니면 "한동훈당 만들어줄래?"(영상은 하단 참고). 본인의 노선은 처음부터 한 갈래였다. 선거 전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에는 반드시 돌아간다"고 못 박으면서, 그 복귀의 의미를 자기 언어로 먼저 정의해 둔 것이다 — "제가 국민의힘에 돌아간다는 것은 '윤어게인' 노선과 완전히 절연하고 계엄과 탄핵의 바다를 건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선 회견에서는 "부당하게 제명된 날 반드시 돌아간다고 말씀드렸고, 선거 승리도 그 약속을 실천하는 과정"이라 했고, 등원 날 복당 절차를 묻는 기자들에게는 "구체적인 절차를 미리 고민해야 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답을 미뤘다. 신당설에는 측근이 일찌감치 선을 그어 둔 터다.

당을 향한 말도 한 방향이 아니다. 정점식 원내대표에게는 축하 난을 보내며 "보수 재건은 미래를 향한 것이지, 과거에 누가 잘못했다는 것을 가려내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고, 같은 날 장동혁 대표를 향해서는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당 전체가 아니라 복당의 걸림돌만 갈라 짚는 화법이다. 그 사이 SNS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소취소 논란을 정조준했다 — 문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보수 야당의 자리를 비워 두지 않는 동선이다. 복당을 요구하는 쪽은 그가 아니다. 조건은 그가 정의해 뒀고, 문은 안에서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유권자가 투표함으로 보여 준 방향과 본인이 정의한 복귀의 조건 — 계엄과의 단절 — 이 같은 문장 안에 있다.

다만 어느 문이 언제 열릴지는 본인의 결단보다 법원의 달력이 먼저 정한다. 7월 2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허위사실공표 사건 선고가 예정돼 있다. 특검 구형은 징역 2년. 벌금 100만 원 이상이 확정되면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약 397억 원을 반환해야 한다. 윤석열 측 변호인 스스로 법정에서 약 400억 원이 반환되면 정당 존립에 영향을 준다는 취지로 변론했다.

개표 직후 김어준은 보수 진영에 "대선후보가 두 명이나 살아 들어오는 셈"이라고 했다 — 한동훈과 오세훈, 생환을 보수의 자산으로 읽는 시각이다. 장동혁 대표를 당 안팎에서 흔들 수 있는 대권급 주자가 왔다는 진단도 나왔다.

그리고 같은 날의 다른 개표함들은 이 단절이 아직 보수 전체의 방향이 아님을 보여준다. 같은 보수 표심이 대구에서는 계엄 당시 표결 방해 혐의(내란 중요임무 종사)로 재판 중인 추경호를 시장으로, 달성군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방송통신위원장 출신 이진숙을 국회로 보냈다. 북구갑의 표가 가리킨 방향과 대구의 표가 가리킨 방향은 같지 않다. 계엄과의 단절은 보수 전체의 합의가 아니라, 이제 막 투표용지 위에 올라온 선택지다.

그래서 마지막 물음은 한동훈에게 돌아간다. 유권자가 열어 준 이 선택지를 그가 보수의 노선으로 끌고 갈 수 있는가, 아니면 폭넓은 연합의 무게에 그 입장이 묻히는가. 계엄과의 단절을 준비한 것이 한동훈 한 사람이었는지, 보수 유권자 전체였는지 — 7월 27일 이후의 국민의힘이 그 답을 받아 들게 된다.


참고 — 영상·기사·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