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형사소송법 — 누가 만들었나

검사의 직접 수사권을 없앤 형사소송법 개정 — 초안은 국회 밖에서 왔고, 심사는 한 달에 소위 아홉 번이었다.

발행 2026-08-12

2026년 7월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재석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이었고 국민의힘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뉴스1).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는 권한과 직접 보완수사를 하는 권한이 사라진다.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권한은 남는다. 10월 2일이 되면 검찰청이 문을 닫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그 일을 맡는다.

그날 저녁 유튜브 시사 방송에 나온 사람들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법 이야기가 아니라 연도부터 말했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보학은 1997년에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1999년부터 검찰 문제에 관여했다고 했다. 거의 27년이 됐다는 것이 그가 붙인 셈이고, 정년 전에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는 것을 보게 됐다는 말이 뒤따랐다.

최강욱은 1999년 국회담당 법무관 시절부터라고 했다. 국회에 다니며 군사법 제도를 폐지해 달라고 의원들에게 요구했고, 그 일로 희한한 사람이라는 지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군사법 제도는 지금도 완전히 폐지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2017년 경찰개혁위원회에도 함께 위원으로 참여했다. 최강욱은 그때 이런 법안을 다 통과시켜야 한다며 밤늦게까지 회의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 27년의 결실

한 달, 소위 아홉 번, 26시간

법안을 심사한 곳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다. 위원장 서영교는 2026년 3월 31일에 선출됐고(이코노믹리뷰), 여당 간사이자 법안심사제1소위원장 김승원이 소위를 맡았다. 7월 30일 본회의에서 개정안 제안설명을 한 사람도 김승원이다(뉴스핌).

두 사람이 8월 4일 방송에서 심사 과정을 숫자로 표현했다. 공식적인 회의 시간만 26시간이 넘었고, 비공식 사전회의까지 합치면 그 두 배는 될 것 같다는 것이 김승원의 말이었다.

서영교가 이어서 말했다. 소위원장을 정하고 그다음 날부터 시작해 한 달이 안 되는 동안 소위만 아홉 번, 전체회의는 여섯 번이었다. 마지막 소위는 아침에 시작해 밤 11시 반까지 이어졌다.

김승원은 이어서 조문 몇 개의 출처를 지목했다. 수사 중에 피해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14일 안에 답을 받도록 한 조항은 서영교가 발의해 넣은 것이고,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할 때 결정문에 이의신청서를 함께 보내도록 한 것도 그의 제안이라고 했다. 심사 초반에 간담회를 여러 차례 연 것도 서영교였고, 그래서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개정안이 촘촘해졌다는 것이 김승원의 설명이었다.

그 조항들이 무엇을 바꾸는지는 김승원이 통과 다음 날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이번 개정안은 피해자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형사 절차에 직접 참여하는 권리의 주체로 바꿨다는 것이었다. 수사 초기에는 권리 구제 안내가 통지되고, 수사 과정은 시간 순서대로 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남는다.

서영교는 이 법에 이름도 붙였다. 「훨씬 더 좋아진 형사소송법」이라는 표현을 자기가 정했다고 그는 밝혔다. 오랫동안 형사소송법이 무엇이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한 다음 서민의 입장에서 정리해 보았다는 것이 그가 붙인 설명이다.

서영교가 형사소송법을 고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7월 24일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태완이법이 그가 대표발의한 법이다. 1999년 대구에서 황산 테러로 숨진 여섯 살 김태완의 사건이 공소시효로 닫히게 되자,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조항을 형사소송법 제253조의2로 신설했다. 재석 203명 중 찬성 199명, 반대는 없었다(허프포스트). 양육을 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구하라법은 20대와 21대 국회에서 임기만료로 폐기되기를 거듭한 끝에 2024년 8월 28일 통과했다. 발의 5년 만이었다(뉴스핌).

초안은 국회 밖에서 왔다

이번 개정안의 바탕이 된 문안은 국회에서 처음 쓰인 것이 아니다.

2026년 3월, 교수와 변호사 12명이 「시민주도 형사소송법 개정 모임」을 만들었다. 방송에서 밝힌 결성 이유는 간단했다. 총리실 검찰개혁 추진단에서 법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6월 5일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106개 조항의 개정안을 발표했다. 통과 당일 최대 공방이 됐던 공소기각 조항도 그때 이미 들어가 있었다.

그 안을 받아 6월 26일 국회에 발의한 사람이 더불어민주당 김용민과 조국혁신당 박은정이다. 통과 당일 방송에서 한 출연자는 시민사회 쪽에 감사를 표하며, 그들이 미리 모여 지방선거 직후에 안을 내놓았기 때문에 그나마 빨리 통과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임 참여자가 밝힌 당시 판단은 이랬다 — 우리마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선거를 핑계로 또 미뤄질 수 있다.

발의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이 한 일은 재촉이었다. 김용민이 3월에 처리하자고 당 지도부에 제안했으나 지방선거 뒤로 미뤄졌다는 이야기가 방송에서 나왔다. 6월 18일 총리실 검찰개혁 추진단은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국회 원구성 이후에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용민은 엿새 뒤 회견을 열어 그 문장을 그대로 읽은 다음 반박했다. 논의를 미루겠다는 방침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며 원구성을 기다려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법사위원장과 법사위원들을 내정해 비공식 논의에 착수하고 원구성 즉시 공식 절차로 옮기면 된다는 것이 그가 내놓은 방법이었다. 회견문에는 형식 절차를 핑계로 미루는 것이 검찰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시간 벌어주기라는 문장도 있었다.

이튿날인 6월 25일 두 사람은 함께 회견을 열었다. 10월 2일까지 딱 100일 남은 날이었다. 국회와 시민은 이미 준비를 마쳤으니 정부가 초안을 제출하라는 것이 회견문의 요지였고, 제출되면 꼼꼼하고 치밀하게 심사하겠다는 문장이 뒤따랐다. 그다음 날 두 사람은 시민 모임의 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김용민은 그 사이에 당대표 선거를 접었다. 7월 5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그가 든 이유는 전당대회로 시선이 쏠린 기간에 검찰개혁이 조용히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잘 진행되는 것 같던 검찰개혁에 소리 없는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고 그는 적었다(경향신문). 7월 15일 방송에서는 전당대회 전에 처리하자며 당 공식 기구에 넣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방송에서 한 출연자는 민주당 안에서 그가 혼자 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날짜무슨 일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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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법제사법위원회 심사 — 소위 9회 · 전체회의 6회 · 회의 26시간서영교·김승원
2026-07-31본회의 통과 — 찬성 175 · 반대 2 · 기권 1국회
초안은 3월에 국회 밖에서 시작됐고, 국회에 들어온 것은 6월 26일이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박은정은 앞선 법안들에서 겪은 일을 근거로 경계를 반복했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든 두 법은 2026년 3월 24일에 이미 제정·공포된 상태였다. 그 심사 막바지에 검찰이 조문을 밀어넣었고 김용민과 함께 일부는 막고 일부는 못 막았다는 것이 그의 기억이다. 못 막은 것은 지금 법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 법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법왜곡죄를 만들 때는 본회의에 올라가기 30분 전에 문구가 바뀌었다는 것이 그가 든 다른 사례다. 그래서 표결이 다가올수록 법사위원들이 개별 접촉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반복해 말했다.

이번에는 그가 만든 조항이 같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뒤 위법이 확인되면 공소를 기각하도록 한 규정을 두고, 표결을 앞두고 막판에 끼워 넣은 조항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박은정은 6월에 발의한 자기 법안에 처음부터 있던 조항이고 그때 전문이 공개됐는데도 아무 말이 없다가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것이라고 답했다. 판례에 있던 것을 조문으로 옮겼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표결 전 마지막 절차는 안건조정위원회였다. 7월 29일 열린 위원회의 위원장은 법제사법위원회 최다선인 더불어민주당 박지원이었고, 비교섭단체 몫 위원으로 박은정이 참여했다. 조정은 그날 끝났고 다음 날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이 같은 날 본회의에 상정됐다.

통과를 하루 앞두고 박은정이 심사 과정을 정리했다. 가장 힘들었던 상대는 반대편이 아니었다.

"형사소송법 개정 과정에서 너무나 힘들었고, 국민의힘은 사실은 큰 싸움의 대상이 아니었어요. 근데 민주당 내부 때문에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 설득 과정이 정말 정말 힘들었다."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2026-07-30)

법제사법위원회 심사가 끝난 7월 29일 저녁 방송에서 법사위가 똘똘 뭉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용민을 두고 당대표 선거를 내려놓고 가서 했으니 역할이 컸다는 말이 이어졌다. 당사자는 자기 역할이 없었다고 답했다. 팔다리가 다 잘리고 몸통으로 앉아만 있었다는 것이 그의 표현이었다.

찬성하지 않은 사람들

표결 전에 반대 방향의 법안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홍기원이 대표발의한 보완수사권 존치 법안에 열한 명이 이름을 올렸다. 홍기원과 곽상언, 이소영, 고민정, 김남희, 모경종, 문진석, 민홍철, 박균택, 박희승, 주철현이다.

홍기원은 7월 16일 방송에서 자기 법안을 설명하며 상대 쪽 안부터 말했다. 박은정과 김용민이 1년 동안 고민해 만든 안이 있고 당 TF가 만든 안이 있는데, 두 사람의 안은 검사에게 수사권을 하나라도 주면 안 된다는 전제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자기도 검사에게 수사권을 주는 것은 걱정하는 쪽이지만 국민에게 피해가 가면 곤란하다는 것이 그가 다른 안을 낸 이유였다.

7월 31일 표결에서 이 가운데 아홉 명은 찬성했다. 곽상언이 반대했고 이소영이 기권했다(문화일보).

곽상언은 표결 직후 페이스북에 곧 다가올 국민의 고통이 눈에 보이고 국민의 눈물이 귀에 들리는데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한국일보). 그가 당론과 다른 표를 던진 것은 그해 두 번째다. 2월 26일 법왜곡죄 표결에서도 반대했고, 그때 든 이유는 경찰이 검찰 위의 기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소영은 당내 선거로 논의가 왜곡되지 않도록 선거 이후에 차분히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오마이뉴스).

나머지 반대표 한 장은 개혁신당 이주영의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출신 초선인 그는 이 법을 피해자를 기다리게 하고 가해자를 기뻐하게 하는 법안이라 불렀고,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 들려 있던 칼을 다른 쪽으로 옮겨 쥐어 주는 개혁이라고 했다(시사저널).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이언주는 다음 날 페이스북에 입장을 남겼다.

"검찰 개혁이 시대적 과제라는 것엔 저도 100% 동의하지만, 보완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냐 마냐의 문제는 검찰개혁이나 정치검찰하고는 다른, 국민의 특히 피해자의 기본권 보장 차원의 문제입니다."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2026-08-01)

법무부 장관 정성호도 당론과 다른 입장을 냈던 쪽이다. 보완수사권 폐지가 당론으로 정해진 7월 24일 그는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고, 사흘 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찰개혁의 95%는 달성됐다고 보며 건강도 좋지 않다고 공개했다. 대통령은 만류했다(YTN).

남은 숙제

표결 당일에 이미 다음 순서가 잡혀 있었다. 검찰 수사권이 폐지된 뒤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두고 그날 국회에서 토론회가 예정됐고, 안건은 경찰의 부실수사 방지와 피해자 보호였다. 박은정도 참여자로 이름이 올랐다.

법은 정해졌고 조직은 아직이다. 10월 2일까지 두 달이 남지 않았는데, 조직 운영에 관한 법을 그 전에 다시 고쳐야 하고 손질할 하위 법령이 190개가량이다. 인사와 예산 배분도 정해지지 않았다. 공소청에 수사관을 몇 명 남길 것인지도 아직 답이 없다.

법 안에도 만들다 만 것이 있다. 검사가 보완수사 요구를 반복해 사건을 계속 되돌려보내는 경우를 막을 장치, 그리고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내주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경우를 막을 장치다. 둘 다 이번 개정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8월 4일 방송에서 진행자가 이 두 가지를 그대로 물었다. 서영교의 답은 그것을 막을 장치가 지금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만들려 한다는 말이 뒤따랐다.

법이 통과된 지 나흘째였다.


참고 — 영상·기사·자료